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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왕 캠벨의 복수혈전이 시작됐습니다- 추동훈 매일경제 기자 본문

투자공부

포도왕 캠벨의 복수혈전이 시작됐습니다- 추동훈 매일경제 기자

Young_Glog 2024. 9. 7. 19:39

영상을 쉽게 글로 만든 블로그!

영글로그 시작합니다!

 



1. 캠벨 포도와 그 역사

1-1. 캠벨 포도의 개발과 성공
 -  캠벨 포도는 1817년 조지 캠벨에 의해 개발됨
 -  캠벨은 원래 캠벨 얼리라는 포도 이름을 사용했음
 -  캠벨 포도는 아시아 시장에서 대명사로 널리 알려짐
 - (중요) 1821년, 캠벨은 이사 가족이 오하이오주 샌더스키로 이사 가기 시작함
 -  이사 가족이 이사 가기 전에 이미 이사 가족에게 캠벨 포도가 알려져 있었음

1-2. 캠벨 포도의 특징과 성공
 - (중요) 캠벨 포도는 보라색 계열의 블루 그레이프와 청포도를 포함
 - (중요) 빨간색 계열의 적포도 레드 그레이프도 존재
 -  캠벨 포도의 대표적인 특징은 까만 포도를 먹음
 -  캠벨 포도는 원래 많이 먹는 포도로, 인기를 얻음
 -  2011년, 샤인머스켓이 캠벨 포도를 인기 포도로 등장

1-3. 캠벨 포도의 현재 상황과 전망
 - (중요) 2008년부터 캠벨 포도는 대형 유통사의 대세포도로 자리 잡음
 -  캠벨 포도는 매출 30%를 회복해, 샤인머스켓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
 -  하지만 캠벨 포도가 훅 치고 올라가면서 전성기를 잃었음
 -  최근에는 캠벨 포도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음
 -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

2. 캠벨의 과일 정책과 델라웨어 개발 이야기

2-1. 캠벨의 농업 도입과 아버지의 은퇴
 -  캠벨 가족 이사가 캠벨 포도 탄생을 위해 고민하며 캠벨 포도 발명
 - (중요) 데이빗 캠벨은 신문사 사장이 되어 라디오 방송을 시작, 농업의 중요성 강조
 -  캠벨은 아버지 데이비드 캠벨의 아버지 캠벨 가문과 떨어짐
 -  아버지의 은퇴 후 캠벨은 미국 델라웨어로 이사, 새로운 품종 델라웨어 포도를 키움

2-2. 델라웨어 포도의 발견과 캠벨의 역할
 - (중요) 캠벨 이사 간 델라웨어 도착 후 2년 뒤에 델라웨어 포도 이름이 나오기 시작
 -  델라웨어 포도 발견에 대해 캠벨은 전국의 미국 전역에 알리는 홍보인이 됨
 -  델라웨어 포도는 미국을 대표하는 포도로 높은 인기를 얻음
 -  델라웨어는 델라웨어 피치라는 맛있는 음료를 생산하고 있음

2-3. 델라웨어 포도의 홍보 전략
 -  델라웨어는 포도의 대표적인 농수산물이며, 농업을 위한 홍보가 중요함
 -  캠벨은 델라웨어 포도를 홍보하기 위해 전국에 직접 음료를 소개함
 - (중요) 캠벨은 델라웨어를 미국의 대표적인 농수산물로 만들기 위해 일함
 -  델라웨어 포도는 미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미국의 상품화를 이끌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3. 캠벨 포도의 탄생과 그 특성

3-1. 캠벨 포도의 탄생
 - (중요) 1892년, 다이아몬드와 얼리 콘코드를 결합해 캠벨 얼리 품종 탄생함
 -  캠벨은 75세의 나이에 포도 품종 개발에 성공함
 -  개발 과정에서 15년간의 기간이 소요되어 포도의 단점들을 개선함
 -  캠벨 포도는 추운 날씨에도 잘 버티고 병충해에도 강함
 -  아시아 사계절에도 잘 자라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음

3-2. 캠벨 포도의 특성과 한국 도입
 - (중요) 단맛과 신맛이 균형 잡힌 맛으로 유명함
 -  샤인머스켓과 달리 맛이 강한 품종으로 국내에서도 인기 있음
 -  캠벨 포도는 한국에 1908년에 빠르게 도입되었음
 -  그러나 최근에는 캠벨 포도의 인기가 점차 위축되어 있음

3-3. 캠벨 포도의 현재 상황과 논쟁
 -  캠벨은 원래 샤인머스켓보다 덜 인기였으나, 국내에서 100년 이상 유지됨
 -  캠벨 포도 개발 이후 6년 뒤에 캠벨의 사후 자리에 포도 품종 개발자인 캠벨 이저는 사망함
 -  현재 델라웨어 카운티에는 캠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표지판이 있음
 -  캠벨의 개발한 포도 품종이 국내 포도사의 품종 개발에도 영향을 미침

 

***전체 스크립트

더보기

화자 1
00:00
마트에 가보니까 또 캠벨 포도 원래 많이 먹는 포도가 있었고요. 요즘엔 또 대세는 또 샤인머스켓 

화자 2
00:05
사실 저도 최근 몇 년간은 그 샤인머스켓에 손이 조금 더 가긴 했는데 사실은 쪼끔 생소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였죠 

화자 1
00:12
이 캠벨 얼리가 한국에 들어온 거 1908년이라고 합니다. 그 말인즉슨 샤인머스켓이 인기를 얻은 게 불과 5년이다 하면 110년 이상 인기가 있었던 부도가 사실은 우리 그 영광을 오랫동안 누렸었는데 이러한 포도가 굉장히 좀 위축되어 있다라는 점이 재미있는 이야기 

화자 2
00:28
아 이거 샤인머스켓 그만 먹고 캠벨러 다시 넘어가야 되나 이런 생각도 좀 드네요. 

화자 1
00:32
포도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까에 대한 흥미가 조금 더 커져 

화자 2
00:37
네 위대한 기업가의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파란만장한 사업 이야기를 들어보는 브랜드 메이커스 시간입니다. 추동훈 매일경제기자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화자 1
00:46
네 안녕하세요. 

화자 2
00:47
포도 이야기 갖고 오셨네요. 

화자 1
00:48
맞습니다. 저 처음에 들어왔을 때 교수님이 살이 빠지신 줄 알고 

화자 2
00:51
엄청 놀랬었어요. 아이 참 듣기 좋은 이야기긴 한데 박정호 교수님보다는 제가 

화자 1
00:56
맞습니다. 네 자 오늘 말씀해주신 대로 포도 이야기를 가져왔는데요. 좀 말랑말랑한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사실 역대급이라고 불렸던 더위가 이제 좀 가시고 있지 않습니까? 또 요계절에 어울리는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포도인데요. 이 포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앵커님은 포도 좋아하시나요? 

화자 2
01:14
좋아합니다. 

화자 1
01:14
어떤 포도 혹시 요즘에는 즐겨 드시는지 

화자 2
01:16
남이 사준 포도 

화자 1
01:17
남이 사준 포도요 너무나 정답이신데요. 사실 저도 포도 좋아하는데 요번에는 마트에 가보니까 또 캠벨포도 원래 많이 먹는 포도가 또 있었고요. 

화자 2
01:28
까만 포도 

화자 1
01:29
그렇죠. 요즘에 또 대세는 또 샤인머스켓이었습니다. 그리고 2기도 하구요. 현재 진행형이냐 과연 이제 지나가는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인데요. 

화자 2
01:38
결국은 승부가 어떻게 날지 궁금해요. 사실 저도 최근 몇 년간은 그 샤인머스켓에 손이 조금 더 가긴 했는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까 사실은 쪼끔 생소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였지 진짜 눈 가리고 뭐 어떤 게 맛있어 아니면 너 평생 이 포도만 먹어야 되는데 뭘 고를래라고 하면 아 그 까만 포도로 가야 되는 건지 아니면 초록색 포도인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저는 

화자 1
02:00
네 정말 정확한 포인트이신데요. 최근에 대형 유통사에서 조사를 하나 했습니다. 근데 말씀하신대로 기존의 대세였던 샤인머, 머스켓의 리더십에 균열이 살짝 발생하고 있다라는 게 확인이 됐는데요. 이 캠벨이 차지하고 있는 매출 비중이요. 3년 만에 30%를 회복했다라는 보도가 나온 것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샤인머스켓이 거의 대세포도로 자리 잡혀서 매출 20%까지 떨어졌었던 캠벨 포도가 다시 30%를 회복하면서 과연 샤인머스켓의 아성에 도전을 할 수 있냐 기존의 왕자를 되찾을 수 있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화자 2
02:35
전성기 때는 캠벨이 1등이었나 봐요. 

화자 1
02:37
압도적인 1등이었고요. 뭐 사실 포도하면 캠벨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 5년 사이 6년 사이에 샤인머스켓이 훅 치고 들어오면서 

화자 2
02:46
버스켓은 지금 몇 %쯤 돼요. 

화자 1
02:47
지금 매출 점유율이 그래도 아직까지도 50.6%나 됩니다. 

화자 2
02:52
아직은 샤인머스켓이 1등 그러나 캠벨이 다시 바닥 찍고 치고 올라가는 맞습니다. 

화자 1
02:56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고요. 캠벨이 과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캠벨 포드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화자 2
03:07
오늘은 캠벨이라는 품종을 만든 

화자 1
03:10
그 이야기 맞습니다. 한번 들어보죠. 네, 뭐 먼저 이야기에 앞서서 요즘에 계속해서 이제 메이커스를 시작할 때 1가지 교훈 포인트를 잡아내려고 하고 있는데요. 오늘의 교훈은 이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캠벨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구요. 이 메세지가 나오는 이유 뒤에서도 한 번 더 설명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화자 2
03:31
허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다. 

화자 1
03:33
그렇습니다. 자 먼저 포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이 포도사 자체가 인류사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포도는 인류와 굉장히 오래 같이 왔던 과일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적어도 8천년 전에 유물을 뽑았는데 여기에서 포도씨가 발견이 됐다. 즉 최소한 8천년 전에는 포도를 먹었다라는 것이 확인이 됐고요. 그만큼 오래됐던 과일포도인데 먹는 과일 포도뿐만 아니라 이 포도가 쓰임 틈새 굉장히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포도씨유 기름으로도 쓰이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이걸 뺄 수가 없습니다. 바로 포도주 서양권에서는 와인이라고 불리는 술이 바로 이 포도로 만들어진 술 이것입니다. 자 서양 문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라고 할 수도 있구요. 서양 음식 문화의 한 축 수축이다라고 하는 와인이 이 포도에서 시작될 만큼 예 포도를 둘러싼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요. 그리고 이 포도를 색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 3가지 색으로 나누는데 영어로는요 블루그레이프라고 하는 보라색 계열의 포도가 있구요. 

화자 2
04:29
조금 전에 제가 까만 포도라고 얘기했던 그게 블루그레이프군요. 

화자 1
04:32
맞습니다. 그리고 이제 청포도라고 하는데 이게 샤인머스캣류를 말합니다. 이게 바로 와이트 그레이프 백 포도주로 만들기 때문에 화이트 그레이프라고도 하는 청포도가 있구요. 빨간색 계열의 적포도 레드 그레이프가 있습니다. 도는 빛이 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델라웨어 뭐 요런 것들인데요. 어 그런데 한국에서는요 이 블루 그레이프를 표현하는 한국말이 없습니다. 왜냐면요 말씀드린 대로 글루 그레이프 자체가 캠벨이고요. 캠벨이 포도로 쓰이기 때문에 

화자 2
05:00
그래 까만 포도가 포도고 까맣지 않은 포도는 별도로 청포도라고 불렀지 

화자 1
05:04
맞습니다. 

화자 2
05:05
우리가 포도 그러면 당연히 까만 거 

화자 1
05:07
맞습니다. 이게 서양과 좀 한국이 다른 것인데요. 한국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고. 캠벨이 사실상 한국에서는 포도의 대명사로 쓰였기 때문에 캠벨이 포도에 대한 이야기로써는 충분히 할 게 많다라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 콜라 주세요. 라고 하면 당연히 코카콜라라고 생각을 하듯이 

화자 2
05:24
그건 아닐 수 있습니다. 

화자 1
05:25
이제는 조금 바뀌고 있나요? 

화자 2
05:26
아 그건 펩시콜라가 들으면 조금 좀 불편한 얘기이겠죠. 

화자 1
05:29
그게 지금 어찌 보면 지금 포도라고 캠벨이라고 하면 샤인머스켓이 불편하듯이 그런 상황이 지금 

화자 2
05:34
수십 년 전에는 당연히 콜라는 그 콜라지 무슨 다른 콜라 

화자 1
05:38
그런 이유 때문에 포도의 대망사 캠벨이 포도라고 불리고 있는데요. 이 캠벨 포도를 만든 사람이 바로 조지 캠벨이라는 사람입니다. 

화자 2
05:47
자기 이름 붙였군요. 

화자 1
05:48
맞습니다. 재미있죠. 사실 저도 이제 브랜드 스토리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뭐 시대에 유행하는 또 뭔가 좀 재미있는 시기가 왔을 때 어떤 브랜드를 나오면 검색을 해보거든요. 예 사실 저도 캠벨이 사람 이름이라는 걸 몰랐었습니다. 캠벨 포도의 정확한 이름은요, 캠벨 얼리라는 포도 이름입니다. 이게 왜 이렇게 이름이 붙였나 뭐냐도 뒤에서 설명을 드릴 건데 이 아시아 시장에선 말씀드린 대로 포조의 대명사로 쓰여져 왔었고요. 이것을 개발한 사람이 조지 더블유 캠벨이라는 사람이고요. 이 사람의 생애를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조지 캠벨은 1817년 1월 12일에 뉴욕주에서 이 데이비드 캠벨과 메리 존 스토드 캠벨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 그리고 캠벨이 5살이 되던 해 한 1821년인데요. 어 그의 가족이 뉴욕에서 오하이오주에 있는 샌더스키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화자 2
06:37
권리기사 같네요. 

화자 1
06:38
같습니다. 좀 위로도 올라갔죠 그의 이사가 코리안 그레이프 킹이라고 불리는 한국 포도왕 캠벨의 탄생에 거의 시작점이 되었다. 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배경이 있는데요. 오하이오주가 당시에는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라고 합니다. 

화자 2
06:53
예 그러니까 다양한 과일이요. 

화자 1
06:54
많았겠죠. 그렇죠. 그래서 이곳에서 자라오면서 캠벨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과일을 접할 수 있었고요. 어릴 때 뭐 개구리가 많은 동네에 가면 이 개구리 가지고 놀거나 이렇게 하듯이 이 과일이 많이 나고 이런 데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에 관심을 가졌다 라고 이야기가 

화자 2
07:10
밥 먹고 나서 하는 일이 농사 

화자 1
07:12
그렇습니다. 그래서 캠벨 가족의 이사가 캠벨 포도의 탄생을 만든 나비효과가 되었다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 그렇게 농업인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자 그리고 이 꿈의 이야기를 좀 하기 위해선 아버지 이야기를 좀 해봐야 될 것 같은데요. 

화자 2
07:26
데이빗 캠벨 

화자 1
07:27
네 이 사람은 소위 말하는 식자층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샌더스키에 이사를 오면서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한 것이요. 샌더스키 클라리온이라는 신문사를 차렸어요. 

화자 2
07:38
아 이사와서 신문사 사장이 되셨군요. 큰별의 아버지가 

화자 1
07:42
이 지역에는요 신문이 없었다라고 해요. 이 지역 최초의 신문이 바로 이 샌더스키 클라리온인데요. 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인권을 신장시키고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것을 더욱더 확산시키기 위해서 이 지식인의 수행 역할이었던 거죠. 언론사를 차리게 됩니다. 

화자 2
07:58
신문은 지금의 신문들보다 더 영향력이 클 때였는데 신문사의 사주였다면 맞습니다. 뭔가 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어야 됐었겠네요. 그 동네에서는 

화자 1
08:06
그렇습니다. 당시 인구가 300명밖에 없었던 샌더스키 지역을 포함해서 주변 지역 통틀어서요 최초의 언론사를 차렸던 샌더스키 특히에 아버지 캠벨의 아버지 데이비드 캠벨은 존재감이 금방 부각이 됩니다. 지역에서 금방 유명인사가 됐었고요. 오하이오에 도착한지 7년 만인 1828년에는 상원의원을 지내는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영향력까지 

화자 2
08:28
아버지가 맞습니다. 그럼 이 포도 품종 캠벨을 발명한 우리의 오늘의 관심사인 캠벨은 좋은 집안의 아들으로 자랐겠네요. 

화자 1
08:37
그렇습니다. 사실 뭐 어릴 때부터 이 과일에 관심은 많았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아버지의 일을 또 있는 것 그 당시에도 가장 기본적이었거든요. 그렇게 그는 이제 아버지와 함께 농업에 대한 관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된 아버지의 일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죠. 

화자 2
08:53
그 신문사에 가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됐을 거고, 아버지가 부르면 와서 또 신문도 찍어야 됐을 거고, 그런 일 했을 것 같아요. 

화자 1
08:59
맞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포도 농장을 만들거나 포도를 개발했냐 그게 아니었습니다. 청년이 된 성인이 된 그는요 아버지를 도와서 신문 발행과 출판사업을 병행했었고요. 어 그로 인해서 마음속에 과일을 키운다 새로운 걸 개발한다는 꿈은 품어둔 채 일에만 매진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20대가 지나갔었는데요. 

화자 2
09:19
어디를 돕다가 

화자 1
09:19
맞습니다. 뭐 그랬던 그에게 드디어 변곡점이 찾아옵니다. 바로 1841년인데요. 그의 나이가 벌써 35살이 됐을 나이입니다. 사실 옛날 시대에서 35살이면 꽤나 어른이거든요. 

화자 2
09:32
이제 인생 정리 슬슬 해야 

화자 1
09:33
그렇습니다. 그럴 시기였는데 그 시기에 바로 새로운 변곡점이 나타나는데요. 1841년에 그해 아버지 데이비드 캠벨이 은퇴를 선언합니다. 나이도 많았었고요. 이제는 할 만큼 했다라는 판단하에 

화자 2
09:45
신문사는 

화자 1
09:46
신문사를 어떻게 했느냐 이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아들이 물려받았다면 어찌보면 한국의 캠벨 포도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화자 2
09:53
근데 아버지 사업 물려받지 않았어요. 

화자 1
09:55
그렇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정리를 하면서 미국에선 이런 케이스가 흔합니다. 전문 경영인에게 넘기겠다라는 판단을 한 거예요. 

화자 2
10:01
아예 파셨군요. 

화자 1
10:02
그렇게 해서 이 회사가 

화자 2
10:04
애들이 별로 신문사 일을 잘 못 했나 봅니다. 

화자 1
10:06
그것까지는 제가 한번 찾아봤는데 잘 나오질 않더라고요. 그렇습니다. 뭐 그래서 은퇴를 하면서요 그 회사를 다른 회사로 넘기면서 회사 이름은 샌더스키 클라이온이란 회사가 됐고요. 네 이름이 레지스터로 바뀌었습니다. 

화자 2
10:18
샌더 스키 레지스터로 신문사 이름도 바뀌고 햄벨 가문하고도 떨어지고 

화자 1
10:22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요 지금 또 인터넷에 들어가 보시면 있는 언론사입니다. 어 그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라고도 봐야 될 것 같구요. 자 그렇게 함으로써 캠벨에게는 가슴에만 품고 있던 과수 재배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요 지금 또 인터넷에 들어가 보시면 있는 언론사입니다. 

화자 2
10:38
지겨운 신문사일 이제 안 해도 된다. 

화자 1
10:40
맞습니다. 

화자 2
10:40
원망스럽던 아버지 

화자 1
10:42
예 여기에서 1번에 더 이사가 또 이사 가요 그 이사가 그의 인생을 또다시 바꾸는 

화자 2
10:47
어디로 이사 갔습니까? 

화자 1
10:48
자 요번에는 오하이오 주 아래서 있는 건 똑같은데요. 옆에 있는 도시 이 델라웨어란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이 델라웨어란 지역을요 미국을 좀 아시는 분들은 델라웨어주라는 데가 있다는데 아실 겁니다. 사실 지금 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이 델라웨어 산업이거든요. 그래서 그 델라웨어주와 이 델라웨어 도시라는 곳은 다른 곳입니다. 그걸 먼저 참고로 말씀을 드리구요. 

화자 2
11:12
동떨어져 있는 

화자 1
11:13
안정되죠. 

화자 2
11:13
전혀 다른 이름만 우연히 같다 

화자 1
11:15
마을만 같은 데고요. 그리고 이 델라웨어 포도 좀 아시는 분들의 델라웨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까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적포도의 대명사가 바로 이 델라웨어라는 포도 품종인데요. 뭐 연초 한 3월이면 먹을 수 있는 포도기도 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포도라고 하면은 이 델라웨어 포도가 있는데, 

화자 2
11:32
약간 붉은빛 도는 

화자 1
11:33
맞습니다. 그거 알이 좀 작은 포도인데요. 미국에서 나왔는 이 캠벨이라는 포도 품종을 사람 이름에서 따왔고 델라웨어란 포도는 지역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라고 정리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애요. 

화자 2
11:44
그 이사간 델라웨어가 원래 포도로 유명한 동네였다는 거죠. 

화자 1
11:47
그게 지금부터 또 재미있는 이야기인데요. 그가 이사를 갔던 시점 바로 1849년입니다. 이젠 나이가 40대에 접어들었고요. 자 이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 포도나 여러 과일에 대한 관심을 키워갈 시기였던 것인데 

화자 2
12:00
진짜 인생 발동 늦게 걸리네요. 이분 

화자 1
12:02
늦게 걸렸습니다. 굉장히 늦게 걸린 편이고요. 이 델라웨어 포도 말씀드린 대로 포도로 유명한 곳인데 이 포도가 발견된 시기가 1851년입니다. 즉 그가 이사 간 후 2년 뒤A4도가 이름이 나기 시작했는데요. 네 이 델라웨어 포도가 워낙 역사도 깊고 미국을 대표하는 포도다 보니까 썰이 많습니다.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이 포도가 어디서 발견되었느냐 누가 이렇게 키웠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통설은요, 1855년에 델라이어 지역에 있는 에이브럼 톰슨이란 사람이 전문 육종가로 붙어서요 이것을 도 지역을 대표하는 포도로 확장시켰다 라는 것이 가장 통설이고요. 말씀드린 대로 51년도에 뉴저지주에서 처음 발견은 됐습니다. 뉴저지에서 발견된 이 포도를 델라웨어 사람이 가지고 와서 이게 우리 지역포도다 라고 홍보를 하고 

화자 2
12:49
계속 기르기 시작했다. 

화자 1
12:50
만들었다라는 것이죠. 즉 캠벨이 도착했을 당시에 델레와는 포도의 유명한 데가 아니었어요. 

화자 2
12:55
그러나 고 무렵에 아침 아침 우연히도 델라웨어 라는 새로운 품종이 길러지기 시작했고, 그렇죠. 

화자 1
13:03
캠벨 

화자 2
13:03
하필 고 시절에 이사를 가서 

화자 1
13:05
네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 델라웨어 지역에 도착한 캠벨은요, 바로 델라웨어의 사실상의 외교 홍보대사가 됐습니다. 

화자 2
13:14
옛날에 신문사 집 아들이었으니까 

화자 1
13:16
좀 능한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야 이 지역에 있는 델라웨어란 포도 진짜 맛있다. 네 이거 한번 먹어봐. 먹어봐. 하면서 사실 이 델라웨어란 포도를 전국의 미국 전역에 알렸던 대표적인 홍보인이 바로 이 

화자 2
13:30
캠벨이었다라는 뜻입니다. 농사 언제 지으려고 아직도 계속 이러고 있을까요? 아직까지 

화자 1
13:34
그러고 있는 것인데요. 뭐 델라웨어가 얼마나 유명하냐면요 델라웨어의 이름을 딴 음료도 있습니다. 소다 라고 불리는 탄산음료 중엔 델라웨어 피치라는 음료가 있구요. 이 델라웨어 피치라는 맛이 이제 델라웨어라는 포도에서 나오는 향을 대표하는 맛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여러 플레이벌 중의 하나가 이 델레어라는 게 있습니다. 

화자 2
13:53
그러면 캠벨은 일단 그 아버지 사업 신문사 물려받고 젊은 날 다 지내고 나서 이제 내 인생 좀 살아보겠다고 온 동네에서 델라웨어 라고 하는 새로운 포도의 홍보대사까지 맡았으니 

화자 1
14:05
그렇습니다. 

화자 2
14:05
아 인제 밥 먹고 일어나면 포도 얘기하고 포도 생각하는 게 일이 됐겠네요. 

화자 1
14:10
맞습니다. 이제 그가 델라호에 도착한 지 5년째인 1854년에요. 이곳에 집도 지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집 한편에는요 이 델레어 포대를 기르는 곳을 만들었고요. 네 그 반대편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을 키울 수 있는 또 새로운 공간을 같이 만들었습니다. 

화자 2
14:26
드디어 포도 인생 시작하는구나 

화자 1
14:27
시작하는 거죠. 자 이제 대망의 캠벨 포도가 탄생한 일이 남았는데요. 어 그의 나이 굉장히 늦은 시기에 나왔습니다. 자 캠벨이란 포도는요 무어스 다이아몬드라는 포도와 얼리 콩코더라는 품종을 교배해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또 얼리라는 말이 있죠. 이 포도품종 중에 얼리라는 이름이 들어간 게 있어서 본인의 이름 캠벨 이 얼리라는 품종 이름을 합쳐서 캠벨 얼리라는 품종명이 탄생한 것입니다. 

화자 2
14:52
무어스 다이아몬드와 얼리 콘코드를 결합시켜서 만든 포도가 캠벨 포더인데 새로운 거니까 이름 지을 때 자기 이름 캠벨과 그중에 부모 중의 1사람의 이름을 따서 얼리를 따서 

화자 1
15:03
그렇습니다. 자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이 캠벨 얼리가 탄생한 시기 이야기가 이제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어 이 탄생한 시기가요 1892년인데 그의 나이가 75살이었습니다. 예 이 캠벨의 인생을 보면요 끝까지 품었던 꿈을 끝까지 노력을 해서요. 75이 된 나이에 이루었습니다. 

화자 2
15:22
맘에 드는 품종 나올 때까지 해봤겠죠. 

화자 1
15:24
그렇죠. 이게 15년 정도 걸렸다라고 하는데 캠벨 품종이 나오기 전까지 여러 포도들의 단점들이 많았었습니다. 뭐 워낙 추운 날씨에 견디지도 못했구요. 맛을 내기도 어려웠었는데 이런 것들을 잘 내기 위해서 15년간의 영국 끝에 탄생한 캠벨 이게 결국에는 한국과 일본으로 오게 됐었던 이유도 그가 개발했던 이유와 일치합니다. 

화자 2
15:43
왜 근데 한국 일본에서 특히 더 인기였을까요? 

화자 1
15:46
자 이 캠벨이라는 포도가요 말씀드린 대로 정말로 추운 날씨에도 잘 버티는 사계절이 있는 곳에서도 잘 자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품종의 핵심 요소입니다. 특징이기도 한데요. 병충해에도 강하고요. 추위에 되어 잘 던지다 보니까 이게 동아시아 사계절이 뚜렷한 아시아 지역에서 키우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푸드였더라는 

화자 2
16:06
여름에는 되게 덥고 겨울에는 엄청 추운 그런 곳에서 기를 만한 포도가 이 캠벨이 딱이었다는 

화자 1
16:13
맞습니다. 뭐 샤인머스켓 같은 경우에는 대표되는 맛이 사실 당구도 이 단 것이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서 캠벨 같은 경우에는 단맛과 신맛이 굉장히 균형 잡힌 맛으로도 유명했고요. 여기에다가 키우기가 쉽다라는 점 때문에 아시아 시정으로 이렇게 쉽게 유입이 됐었고 한국에 들어온 거 1908년이라고 합니다. 그 말인즉슨 샤인머스켓이 인기를 얻은 게 불과 5년이다 라고 하면 110년 이상 인기가 있었던 보도가 사실은 

화자 2
16:38
레벨은 우리나라에 온 지는 거의 100년 넘었다 

화자 1
16:40
맞습니다. 그래서 2천년 초반에 아까 여쭤보신 것처럼 전국 포도 재배 면적의 70%가 캠벨이었던 적이 있었다라곤 하는데 

화자 2
16:49
미국에서 캠벨이 만들어진 게 1892년인데 한국으로 넘어온 게 1908년이면 진짜 빨리 넘어왔네요. 중간에 일본 거쳤을 텐데도 

화자 1
16:56
그랬을 텐데 맞습니다. 굉장히 빨리 들어왔고요. 또 넘어온 것도 빨랐을 뿐 아니라 적응도 워낙 잘했던 포도다 보니까 지금까지는 그 영광을 오랫동안 누렸었는데 이러한 포도가 이렇게 지금은 5년 사이에 굉장히 좀 위축되어 있다. 라는 점이 재미있는 이야기죠 

화자 2
17:12
야 캔발 포도 품종의 특성을 들어보니까 어려울 때마다 잘 견디고 이겨내고 그러는 우리 민족의 민족성하고도 좀 비슷해서 아 이거 샤인머스켓 그만 먹고 캠벨로 다시 넘어가야 되나 이런 생각도 좀 드네요. 

화자 1
17:25
네, 뭐 이에 대한 논쟁이 요즘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던데요. 저도 사실 올해는 처음으로 캠벨을 먹어봤습니다. 몇 년 만에 먹어봤는데 역시나 그 캠벨 특유의 맛있는 포도를 생각하면서 과연 이 포도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까에 대한 흥미가 조금 더 커지고 있습니다. 

화자 2
17:40
그리고 과일 가게 하시는 분은 이제 보통 인제 과일 떼어다가 파실 때 샤인머스켓도 박스로 팔고 캠벨도 박스로 팔고 하는데 정말 저 소비자 입장에서는 짬뽕 짜장면 같이 파는 것처럼 캠벨 1송이 샤인머스켓 1송이 그렇게 넣어서 팔았으면 좋겠어요. 

화자 1
17:57
그러게요 정말로 

화자 2
17:58
한 2천 원쯤 더 받으면 차라리 그걸 살텐데 아 살 때마다 갈등합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요 알겠습니다. 금 이분은 언제까지 사시다 떠나셨어요. 지금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고, 

화자 1
18:12
그렇죠. 당연히 옛날에 이제 돌아가셨는데요. 말씀드린 대로 새로운 포도 캠벨을 개발한 뒤 6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1898년에 델라웨어 카운티 자기가 지은 집에서 돌아가셨고요. 혹시 뭐 가시기 쉽지는 않겠지만, 이 델라웨어란 지역에 가면요 그의 집 앞에 캠벨의 역사 그리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표지판 서 있다라고 합니다. 문화재로도 지정이 되어 있구요. 어찌보면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의 포도문화를 만들었던 이 캠벨 캠벨이란 사람 덕분에 대한민국의 포도사가 뒤바뀌었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화자 2
18:43
야 오늘은 한 20분간 걸쳐서 아주 그냥 캠벨을 확실하게 밀어 주시네요. 배울 점이 있네요. 정말 나이 들어서 인제 그만 해야 되겠다. 싶을 때 또 포기하지 않고 또 1번 해보고 해보고 하면서 덕분에 우리가 먹는 캠벨포도 만들어 주신 캠벨의 이야기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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